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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은 지식들/다양한 기업들의 역사

구찌의 역사 (GUCCI)

우선 다양한 회사들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는 취지는 명품 브랜드부터,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역사에대해 알고 소비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포스팅을 하게되었습니다.

 

첫 포스팅은 명품의 대명사이자 핫한 구찌 GUCCI로 선정했습니다.

간략한 구찌 역사

 

구찌는 1921년 설립되었으며, 설립자는 구찌오 구찌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했으며

1940년대 밀라노, 로마 등의 이탈리아 패션 중심지부터 더욱 확산되어 1950년대에는 

런던, 뉴욕, 파리 등 전세계로 매장을 확대하며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였습니다.

 

구찌오 구찌

 

구찌오 구찌의 성장배경과 브랜드 설립 과정

 

구찌오 구찌는 1881년 피렌체의 일반 가정집에서 태어납니다.

구찌오 구찌의 집은 이탈리아에서 대대로 밀집모자를 만드는 일을 하였는데 이를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여 17살이 되던 1897년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전세계 부유층이 모이는 사보이 호텔 (Savoy Hotel)의 벨보이로 일합니다. 중요한 업무는 아니었지만

부유층 사람들의 최고급 가죽 트렁크를 옮기며 가죽제품의 매력에 푹 빠지게됩니다.

 

이후 1902년 고향인 프렌체로 돌아와 프란지(Franzi)라는 제조업체에서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고,

1921년 피란체의 비냐 누오바 거리 (Via VignaNuova)에 자신의 이름에서 딴 '구찌' 가죽 전문매장을

설립했고, 이 설립으로 인해 오늘날 세계적인 명품으로 자리잡은 '구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네 아들과 함께 1940년대 무렵 밀라노,로마 등 이탈리아 패션 중심지를 비롯하여 

1950년대 이후부터 런던, 뉴욕, 파리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구찌' 설립 전 구찌오 구찌는 1906년에 작은 마구상을 운영하며 가죽 승마용품으로 매장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귀족들에게만 인기를 끌고, 마차의 활용이 점차 줄어들고 자전거가 인기를 끌자 구찌는

마구상을 접고 작업장과 제품군을 확대하여 '구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지 구찌의 가죽 제품들은

승마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들이 꽤 많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위기

 

1940년대 구찌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모든 자원이 전쟁에 동원되면서 국제연맹에서 이탈리아로 수출 금지령을

내려 가죽이나 금속의 소재가 부족해집니다. 첫째 아들 알도 구찌 (Aldo Gucci)는

대나무, 대마, 황마 등의 대처품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대마와 삼마를 이용한 작은 다이아몬드가

서로 연결되는 직조로 새긴 디아멘테(Diamante) 캔버스가 나옵니다. 구찌의 첫 시그니처 캔버스였죠.

 

디아만테 캔버스

1947년 세계대전은 종료되었지만, 전쟁에서 패한 이탈리아의 상황은 여전히 침울했습니다.

가죽 관련 회사들이 모두 문을 닫는 가운데 구찌는 가죽을 돼지피역을 활용하는 대안을 찾았고,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의 대나무를 활용했습니다. 전쟁 후 구찌는 구찌 역사상 가장 인기제품으로

평가받는 뱀부백 (Bamboo Bag) 을 만들어냅니다.

 

뱀부백

 

구찌오 구찌의 사망과 뒷세대 구찌들

 

1953년 구찌의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나게되고, 알도, 바스코, 우고, 로돌프 구찌

4형제가 경영을 하게됩니다. 알도 구찌는 탁월한 센스와 감으로 구찌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성공합니다. 1960년대 중반 창립자인 아버지의 이름을 딴 GG 로고를 캔버스 소재로 만들어

옷, 가방, 악세사리 등 다양한 곳에 활용하였고, 팜비치, 비버리힐즈, 도쿄, 홍콩 등에 매장을 세우며

구찌를 글로벌 브랜드로 더욱 성장시켰죠.

 

구찌 로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잡은 1년 후 사망하게 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초 구찌가

경영권을 넘겨받습니다. 하지만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는 크게 반발하며 파올로 구찌라는 이름의

핸드백, 악세사리, 와인 등을 저렴하게 파는 브랜드를 설립했고, 이는 이사회의 반발을 일으키며 이탈리아

전통의 가족 경영이 흔들리게되고, 구찌 상표의 남용으로 이미지도 추락하게되었습니다.

경영권 전쟁에서 승리한 마우리초는 구찌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90년대 뉴욕출신 젊은 디자이너 톰포드

영입했고, 이는 더이상 가족 경영이 아닌 전문 경영인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뜻합니다.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가던 1995년 밀라노 자택 앞에서 마우리초 구찌는 전처의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톰포드

 

톰 포드는 1994년 구찌의 모든 외양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D)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의상 디자인에만 관여하지 않고, 브랜드의 전체 이미지에 관여하였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톰 포드는 매장과 광고 이미지까지 일괄적으로 감독하며, 구찌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알렸습니다.

2004년 톰 포드와 CEO자리에 있던 도메니코 데 솔레가 구찌를 떠나며, 구찌는 3인 디자이너

체제를 맞이합니다.

 

현재의 구찌

 

프리다 지아니니가 CD자리에 오른 후 구찌는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고, 200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냥 올라가기만 할 순 없겠죠? 뚜렷한 방향성 없이 흘러가던 구찌는 결국 브랜드 스스로가

발전이 없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는데요, 2015년 1월 프리다 지아니니가 CD자리를 사퇴하며 그 자리에는

딱히 유명하진 않았던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임명됩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죠.

 

프리다 지아니니 & 알렌산드로 미켈레

 

하지만 걱정도 잠시 구찌는 기존의 구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트렌드를 잡으며 한 층 성장했습니다.

즉 기존의 구찌가 가지고있던 명예, 역사, 자존심이라는 전통을 버렸다는거죠.

구찌의 이러한 대담한 변화에 대중들의 기대도 커졌습니다.

 

구찌의 문을 열었던 톰포드, 구찌를 명품으로 성장시킨 프리다 지아니니, 새로운 구찌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알렉산드로 미켈레 모두 대단한 인물입니다.